북클럽 나란
도덕감정론 번개모임
일시 & 장소
Jan 23, 2022, 10:00 PM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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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세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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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ting ID: 858 5103 5184
1. 신중한 사람과 신중하지 않는 사람 스미스는 신중한 사람은 그의 대화가 항상 재미있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례하거나 거친 행동을 혐오해서 누구에게도 건방지게 행동하지 않고 자신을 남들보다 아래로 놓는다고 합니다. 행동과 대화에서 언제나 고상한 품격을 지니며 사회의 확립된 예법과 예절을 거의 종교적일 정도로 세심하게 준수하기에 다음과 같은 사람보다 더 모범이 된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티푸스, 스위프트 박사, 볼테르, 필립 2세, 알렉산더 대왕, 피터 대제 등이 신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스미스는 이들은 해로운 본을 보여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주 일상생활이나 대화에서 보통의 예법을 아주 부적절하고 건방지게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등 유별난 언동을 했는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p406) 한편으로 신중한 사람은 자신의 의무가 부여하는 것이 아닌 한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네요. 그들은 성공적인 야심의 공허한 화려함뿐만 아니라 가장 훌륭하고 고결한 활동을 수행한다는 실질적이고 확실한 영광보다고, 몸과 마음의 확실한 평정을 방해받지 않고 향유할 수 있는 상황을 더욱 선호한다고 하네요. (p408) 신중한 사람과 신중하지 않는 사람 중에 회원분들은 어떤 사람 인가요?
2. 저급한 신중함과 고급한 신중함의 차이 위와 같은 신중함은 모든 미덕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거나 또는 가장 고상한 미덕은 아니라고 합니다. (p409) 스미스는 위대한 장군, 정치가, 입법가와 같이 고급한 신중함이 완전하게 발휘하려면 완벽한 도덕 적정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기술, 재능, 그리고 습관이나 성향 등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한다고 하네요. 그는 저급한 신중함은 에피쿠로스 학파이고 고급한 신중함은 아케데미 학파나 소요학파 라고 하네요. (p410) 두 신중함의 차이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3. 부정의한 사회 스미스는 경솔함을 얘기합니다. 신중함의 반대 개념 비슷한 것 같습니다. (p410) 그는 경솔함이 악행과 결합되면서 오명과 불명예를 최고도로 악화시킨다고 합니다. 법이 엄격하게 집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있는 사람들을 악행을 저지르고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경솔함과 악행을 가진 재주꾼과 그것들을 가진 바보를 비교합니다. 그는 시저 보르기아를 전자의 유형으로 좀도둑을 후자의 유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정복자들의 폭력과 불의한 행동을 보고는 흔히 어리석은 경이와 찬탄을 하게 되지만, 좀도둑이나 강도, 살인자들의 폭력과 불의는 언제나 경멸과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사악하고 무가치한 재주꾼들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은 신임을 받으면서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법이 약해서 부정의함이 만연하고 그로 인해 경솔과 악덕을 가진 재주꾼이 활개치는 것 같나요?
4. 동감의 근원에 관한 의구심 스미스는 자신의 기쁨이나 고통은 원초적인 감각인 반면에 타인의 기쁨이나 고통은 원초적인 감각이 반사된 또는 공감에서 나오는 관념 (image) 이라고 합니다. 전자는 실체이고 후자는 그림자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p415) 이 생각대로라면 동감이라는 요소는 실체적 감정이 아니기에 그의 이론을 전개하는 기본 전제가 무너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스미스와 흄은 계몽주의자로써 경험론을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감의 근원이 관념이라면 스미스의 아이디어인 공정한 방관자도 사상누각이 아닐까요?
5.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vs 무소식이 희소식 2편 1장 (p415) 에서는 애정 (affection. 주변 사람과의 정이랑 비슷한 개념)은 습관적 동감이라고 합니다. 스미스는 가족, 이웃, 친척들이 가까이 살면서 동감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로 인해 애정이 생긴다는 설명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이는 애정에 관한 일반법칙 같습니다. (본능 같은 것 같습니다.) 같이 살지 않으면 비록 형제라도 애정이 덜 하게 된다고 합니다. 상호관계가 점점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자녀도 멀리 있는 귀족학교에 보내서 교육시키면 얻을 역효과도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저는 한편 같이 산다고 정말 애정이 넘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령 부모와 자식 관계라도 무소식이 희소식인 관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습관적 동감이라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떨때는 서로의 관계를 위해서 멀리할 때도 있지 않나요? 너를 위해 떠날꺼야 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회원분들은 습관적 동감이 생기게 같이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거나 경우에 따라 좀 멀어져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요?
토론 주제 1 : 제2편 타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개인의 성품중 1장 천성이 자신의 주위와 관심을 기울이도록 권하는 개인들의 순서 (430P) <어떤 경우에 어느 감정이 우선되어야 할지는 우리 행위의 위대한 판단자이자 중재자인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내부인간, 즉 가상의 공정한 방관자의 결정에 전적으로 맡겨져야 한다.> 라고 합니다. 자기자신 내면의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아래 4가지 경우 당신은 어느쪽을 지지 하시나요?첫째) 볼테르의 비극 <중국의 고아>에서 옛 주인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자식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자식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는 잠티의 대담성에 감탄한다. : 자기 자식을 희생시킨 잠티의 대담성에 동감하는지?둘째) 남편을 위험에 빠뜨리고 타타르족의 손에서 자기 아이를 되찾아 오는 이담의 모성애를 용서하고 사랑한다. : 남편대신 아들을 구한 이담의 모성애를 받아들일수 있는지?셋째) <일리아스 21권중> 뤼카온의 죽음에 대해.. 고대 그리스는 탄원자를 해치지 않는 풍습이 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살려달라고 무릎을 잡고 탄원하는 프리아모스의 어린 막내 아들 뤼카온을 도륙 하다시피 잔인하게 죽인다. 또 그의 어머니 헤카베가 아들 시신으로 장례를 지내는것도 허락치 않고자 시신을 강물에 던저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렸다. : 뤼카온의 죽음과 아킬레우스의 분노중 당신은 어느쪽에 연민의 정, 동감을 느끼는지요?넷째) <에우리피테스 비극집>중 메데이아의 복수에 대해.. 콜키스 공주 메데이아가 왕인 아버지를 배반하여(콜키스 왕국이 망하고 왕인 아버지와 오빠들이 죽음을 당한다) 이아손을 도와주고 둘은 결혼을 하고 두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민족 출신 메데이아에 싫증이 난 야심가 이아손이 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기로 결심하자, 남편의 배은망덕에 절망한 메데이아가 복수를 하는데, 우선 크레온의 딸을 독살하고, 이아손으로 부터 얻은 두아들을 살해한다. : 메데이아의 복수를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을 볼때 여러분은 동감하는지요?
토론주제 2 : 자기제어 - 과도한 자아자찬이나 자아평가 (475) 3-28. 자기제어 - 과도한 자아자찬으로 잘못된 예 어느정도 과장된 자화자찬이 없다면 세상에서의 대성공, 인류의 감정과 의견을 지배하는 위대한 권위를 획득하기 어렵다. 걸출한 인물 &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인물들이 그처럼 뛰어날수 있었던 주요원인은 그들의 위대한 공로와는 전혀 비례하지 않을 정도의 과도한 자만심과 자화자찬 때문이다. 이런 자만심은 거의 광기와 어리석음에 가까운 허용에 빠지도록 한다. 그 예로, 1) 알렉산드로스 대왕 : 자신을 신으로 상상하고 자신의 이름을 신들의 명단에 올렸으며, 또 어머니 올림피아를 신들의 명단에 올려달라고 요청 했다. 2) 소크라테스 : 자신이 신으로 환상되는것은 반대했지만, 신으로 부터 은밀한 계시를 받고 있다고 환상하는 것은 허용했다. 3) 카이사르 : 그의 건전한 두뇌도 완전하지 않았기에, 자신은 비너스(아프로디테)여신으로 부터 내려오는 신성한 가계의 한 사람이라면서 즐거워했다. (그들의 성공은 커다란 민중적 환호와 결합되어, 흔히 이들중 가장 위대한 사람의 머리까지 상당히 돌아버리게 만듦으로써 자기자신을 중요한 인물이자 유능한 인물인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든다.) 3-32.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의 예 전체적으로 보면 친근감도 있고 존경할 만하기도 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는 경멸스럽고 협오스러운 인물로 변해버린다. (성공에 도취된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업적보다 자기 부친 필립포스의 업적을 더높이 평가했다는 이유로 클리투스(Clytus)를 죽였고, 페르시아식 숭배를 거부한 칼리스테에스를 고문해 죽였고, 부친의 친구였던 덕망있는 파르메니오를 살해했다.) 이런 과도한 자아평가는 우리로 하여금 혐오감과 반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것을 오만과 허영심이라 부른다.토론내용) 과도한 자아자찬이나 자아평가로 주위사람들로부터 미움이나 질투를 야기해서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을 통해 엿볼수 있습니다. 위대한 성공을 이룬후 자기제어를 하지못해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흔히 볼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나 사례를 토론해 보고자 합니다.
토론주제 3 : (434p) 제6부 제2편 제2장 : 천성이 우리의 자혜의 대상으로 우리에게 추천하는 사회들의 순서 자혜를 배풀어야 할 사회단체들의 순서에서, “천성은 우리가 자혜를 베풀어야할 가장 큰 사회단체가 국가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각국은 주변의 이웃나라들 중 어떤 나라가 세력을 키우고 확장하면 자기 나라가 정복당할 것이라고 예견하거나 상상한다. 그리고 민족적 편견에서 나오는 이러한 비열한 본성은 흔히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이라는 숭고한 본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국가’& 국가들간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비유로,
첫번째 - 로마와 카르타고 관계 공화정때 원로였던 대 카토 왈, “나의 의견은 마찬가지로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조국에 대하여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던 외국에 대해 거의 광적으로 격분해 있는, 강하지만 조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품고 있는 야만적인 애국심의 자연스런 표현이다. 또다른 원로이며 집정관을 지낸 스키피오 나시카 왈, “너의 의견은 마찬가지로 카르타고는 멸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더욱 관대하고 개명된 정신의 너그러운 표현이다. 비록 과거에는 적국이었지만 이미 쇠락해서 더 이상 로마에 대해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에 대해 그는 어떤 반감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제국이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를 이룩하기전에, 카르타고 서쪽으로 누미디아 왕국(지금의 리비아) - 마우리타니아 왕국(지금의 알제리) 이 존재해 있었다.)
두번째 - 영국과 프랑스 관계 두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 발전에 대해 투기하는 것은 분명 양국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인류는 이들로부터 이득을 보고, 또한 인성은 고상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발전에 있어서 각국은 이웃나라에 비해 자신이 더욱 뛰어나도록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뛰어난 것을 방해하는 대신에, 인류에 대한 사랑에 입각하여, 이를 촉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민족적 편견이나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적 경쟁의 정당한 목표인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토론내용) 한반도 주변국을 비추어 볼때,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 <남한과 북한>의 미래를 둘중 어떤 관계로 발전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