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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자아성찰의 끝은?

Writer's picture: Linda ParkLinda Park

헤르만 헤세 <데미안>을 읽고

전반적으로 정신이 없었다. 번역을 담당한 순천향대 이영임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당연한 일이다. “이야기가 외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현상들, 꿈과 환상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는 보통 현대소설, 역사소설이나 회고록을 읽기에 이런 유의 책에 익숙지 않았다.


데미안을 통해 알레고리라는 단어도 새로 배우게 되었다. 이야기 전체를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실로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단순히 인물로만 여기면, 초점이 샛길로 새기 쉽다.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그들에게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열정과 욕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싱클레어의 제2의 자아로 해석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이는 책 마지막에 작가도 분명히 확인을 시켜준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똑같이 닮아있는 나를.”


싱클레어가 여덟살일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후기에서 ‘예술적 스케일의 중2병’이라고 불리듯이, 그는 깊고도 기나긴 자아성찰을 한다. 아무래도 성인인 작가가 허구로 썼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어떻게 그 나이에게 이토록 심각한 고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중고등학교 때 기껏 고민한 게 살 빼는 거, 남친 사귀는 거, 성적 올리는 거, 부모님 몰래 노는 거 정도였다.


싱클레어의 조숙함은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어린 시절을 보면 조금 더 이해가 간다. 그는 선교사 가정에서 자라다가 수도원 신학교에 들어가지만, 7개월 후 시인이 되려고 도망친다. 그때가 채 15살이 안 된 때이다. 그 해 그는 자살 기도를 하고 정신 요양원에 입원해 몇 개월을 보낸다. 그 후 김나지움에 입학하지만 그다음 해에 학업을 중단하고 시계 부품 공장에 취업을 하게 된다.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청소년기는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싱클레어를 보면 헤르만 헤세도 남들과 섞이기를 힘들어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았을 듯하다.


책에서 반복되는 메시지 중 하나는, 군중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내 삶에서도 실천하는 인생철학 중 하나이다. 그러나 나의 신념은 내면을 향한 명상은 세상 (즉 사람들) 과의 소통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개 내내 싱클레어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립되어 보내고, 그중 데미안 및 에바 부인과 보내는 시간도 내면의 대화라고 본다면, 그는 자아에 대한 또한 세계에 대한 가치관의 형성을 혼자의 시간으로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따라서 여러 가지의 망상을 일으키게 된다. 부잣집 여학생들을 보며 “나보다 천 배는 더 착하고 순결”하다고 상상하며, 베아트리체를 발견한 후 “이제 나는 사랑하고 숭배할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다… 삶은 다시 예감으로 가득 찼고, 신비롭게 동터 오는 여명으로 영롱했다... 내가 숭배하는 이미지의 노예요 종복의 신세에 불과했지만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편안해졌다.” 라고 고백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또 다른 위험한 사상을 써 보인다. 싱클레어, 데미안, 에바 부인 외 그들과 모이는 사람들은 카인처럼 이마에 표적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그들은 멍청한 군중으로 인해 썩어있는 세상에 “어떤 모범을, 삶의 다른 가능성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됐든 간에 한 그룹의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인종주의이다.


이런 문제 되는 부분들을 지니고 있지만, 1919년에 출간한 책 치고는 매우 진보적인 사상들도 보여진다. 전체주의를 지양하며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인간의 본성 중 선과 악을 모두 끌어안으라고 말한다. 특히 성생활을 죄악으로 취급하는 기독교의 교리를 적극 비난한다. 한 인간이 성장하며 겪는 자아형성의 고통을 극적으로 표현한 책.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해 고민하는 만큼 한 번 읽어보면 많은 이들과 대화의 장을 이어나갈 수 있는 통로로 보인다.


2021년 1월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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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바람
바람
Jan 20, 2022

"제2의 자아" 아주 탁월한 해석에 감탄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처음 출판했을때는 자신이 저자라는 표시를 하지 않아 에밀 싱클레어가 저자인 것처럼 장치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마치,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생"을 집필했던 것과 같이요. 철자는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필명이"에밀"이라고 읽혀진다는 (한국어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페이스 북에도 올려주신 글 공유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269676308063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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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y
Stevy
Jan 17, 2022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 했는데, 린다님 덕분에 데미안의 감동이 느껴집니다..

2개의 자아, "아브라삭스"....

그리고 "책을 읽다가 한 개의 새로운 인식을 발견했을 때, 나는 에바 부인의 키스를 받은 것과 똑같은 감정을 맛보았다." 라는 문구는 영원히 기억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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