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10월 정기모임에 작성한 독서노트입니다.
Preface
요약
저자는 지난 50년간의 원자물리학에 대한 경험을 공유함으로 과학은 대화에 근간을 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인간, 철학, 정치적인 문제들과 과학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기본적인 철학, 윤리, 정치적인 문제들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준 현대 원자물리학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기를 기원한다.
개인적인 생각
언제나 책을 펼칠때 설레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유명한 책은 그런 설레는 마음이 더 커지는데요. 예의 설레는 마음으로 서문을 읽어나갔습니다. 저자가 책을 쓴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최근 학문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조금 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통섭의 개념과 비슷한 이야기를 저자가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단지 놀라운 것은 이 책이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씌여졌다는 사실입니다.
1 First Encounter with the Atomic Concept (1919~1920)
요약
하이젠베르크가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원자에 대한 친구들과의 대화
책에 대한 원자 그림에 대한 논의 - 개념이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경험 이전에 존재한 것인지 개념과 경험을 구분하는 근본적 원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논쟁
기본적인 질서로 향하는 길은 음악, 철학, 과학적으로 열려져있음
실험을 통해 경험을 늘려가기 전에 철학적인 단정은 X
개인적인 생각
대화의 주된 내용은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험론적인 입장에서는 원자는 관찰이 제한적이어서 알려진 개별적인 경험들로만 단편적으로 표현이 된다는 입장이고, 합리론적인 관점에서는 불명확하기 때문에 원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명확한 정보가 많지 않던 원자에 대해서는 경험론적이든 합리론적이든 명쾌한 설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중간에 하이젠베르크가 프룬성에서 다양한 친구들의 중심이 없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지쳐가다가,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보편원칙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아마도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보편원칙을 찾아야만 원자에 대한 논쟁이 의미있는 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는데요. 이어지는 대화에서 마지막에 커트가 실험을 통해 익숙해지기 전까지 철학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삼가해야한다는 부분에 하이젠베르크의 마음이 숨어있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2 The Decision to Study Physics (1920)
요약
조머필드 교수: 이론 물리에 관심이 있는 하이젠베르크에게 호의를 보이고, 실험과 같은 작은 일들의 중요성을 강조
음악하는 친구들과 엄마: 위대한 발견을 위해서는 문화적인 진보가 우선되어야 함, 왕의 영광은 수레끄는 사람에게 달려있음, 신중함과 작은 일에 대한 주의가 중요, 물리학이 중요한 시대일 수 있음
울프강 파올리: 조머필드 교수와 달리 헌대 물리학은 실험보다는 실험에 대한 지식과 수학이 중요하다고 조언, 정립이 거의 끝났거나 실험에 대한 수학적 해석이 복잡한 상대성 이론보다는 해석되지 않은 실험들이 많고, 새로운 법칙들을 찾아야하는 원자 이론이 더 재미있을 것, 전통 물리학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기본 지식도 필요하다고 함
개인적인 생각
제럴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발전된 사회에 받아들여져야 발명이 위대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장에 나오는 왕과 수레꾼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물리학계의 유명한 연구자인 조머필드 교수를 만난 것만으로도 하이젠베르크가 위대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던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작은 일에 충실해야한다는 큰 가르침이 더 큰 공헌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올리 역시 매우 유명한 물리학자인데요. 작은 일에 충실해야한다는 조머필드 교수의 담론으로부터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끄집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파올리가 상대성 이론이나 원자 이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는데요. 작은 일에 충실하기도 해야하지만, 연구 분야의 전반적인 동향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올리가 기본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3 “Understanding” in Modern Physics (1920~1922)
요약
이해와 관한 대화: 관측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이론 vs. 다양한 현상들을 단순하고 일반적인 법칙으로 도출
보어의 원자이론: 행성계와 유사하게 핵의 주위를 전자가 도는 원자 모형, 하지만, 외부의 영향에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을 설명과 전자에서 방출되는 빛에 대한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움
보어 교수와의 대화: 원자 구조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언어가 부족하여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기는 불가능, 가능한 연관성을 찾아내는데 초점, 그렇다는 원자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해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
일상적으로 이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에 그 개념도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장을 읽으면서 혼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책에서도 나왔듯이 뉴톤의 물리학으로 대부분 설명이 가능한 우리의 일상에서는 예전에 사용했던 이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요. 하이젠베르크에게 원자구조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에도 이해 불가능한 영역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촘스키도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어쩌면 우리는 협소한 정의의 이해로 그에 해당하는 영역 외는 존재를 부정하여 우리의 인식과 사고의 폭을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어떻게 이해불가의 영역을 풀어나가는지 궁금해지면서 앞으로 나올 책의 내용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됩니다.
4 Lesson in Politics and History (1922~1924)
요약
아인슈타인의 강연회: 상대성 이론에 대한 정치적 선동 목격, 왜곡된 정치적 신념이 과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에 실망
정치의 영향: 독일인들은 스스로 방어를 위해 전쟁을 했음,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는 독일의 잘못이라고 판단, 정치의 도구로 전쟁에 동원된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피하려는 노력을 해야함
역사의 영향: 전체주의적인 프러시아 미덕 vs.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더 중시하는 성향, 햄릿이 살았다는 사실이 크론보그 성의 이미지를 크게 바꿈
독일의 상황: 청년 운동가들의 하층민 계몽운동,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들, 패배를 인정하고 발전 방향을 찾으려는 영국식 방식이 더 좋아보임, 진정한 자유인
개인적인 생각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개개인은 사회의 변화에 휘둘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많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보어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이야기가 일제시대 친일파를 두둔하는 논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가다보면 보통사람들은 현재의 관점에서 친일파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크게 느꼈을까요? 어쨌든, 독립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의도였건, 친일파도 독립운동가도 적정한 선에서 책임을 져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되는데요. 그 적정한 선에는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덴마크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책에 나오는 크론보그 성과 프레드릭스보르 성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것 처럼 햄릿이 살았다고 해서 크론보그 성은 매우 유명합니다. 성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데, 한 여름에도 서늘한 성 지하를 둘러보면 세익스피어의 소설이 생각이 나서 특별한 경험을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어 교수의 이야기에 100% 공감하게 됩니다. 성밖에 작은 커피숍에서 마시던 커피의 향이 아직도 기억에 나는 것 같습니다.
5 Quantum Mechanics and a Talk with Einstein (1925~1926)
요약
원자 연구의 어려움: 전통 물리학의 개념과 모델들이 원자 수준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음, 수학 공식으로는 설명이 가능
서광: 관측 데이터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으로 진전이 없던 차에 에너지 법칙과 양자 역학을 수학적으로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게 됨
아인슈타인과의 문제 제기: 전자 궤도가 관측이 됨에도 불구하고 원자내 전자의 궤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은 모순이라고 제기, 자연 법칙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닌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 이론에 회의적인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의 반론: 원자가 안정성을 가지면서도 불연속적이고 비일관적인 것은 정적인 에너지가 변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느냐는 아인슈타인의 주장, 저자는 시간과 공간과 같은 기존의 개념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고, 조금 더 실험의 결과들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
개인적인 생각
아인슈타인과 저자의 악연(?)이 시작되는 부분이군요. 물리 이론이 관측 가능한 것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상대성 이론도 관측 가능한 것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냐고 저자가 받아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자 이론과 상대성 이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좀더 충실한 이해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쨌든, 기존의 물리 개념들로는 양자역학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닥 생각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가지 이유가 양자 역학의 연구들이 대부분 통계학적인 접근 방법이기에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양자 역학의 연구들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은 여전히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대로 통계 결과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인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 편인데요.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존 지식이나 인식의 한계로 그러한 이론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에도 동의를 하게 됩니다.
6 Fresh Field (1926~1927)
요약
슈뢰딩거와 보어: 파동물리학으로 양자 도약과 같은 개념없이 양자 현상들을 설명, 플랑크 복사 법칙은 설명하지 못하고, 양자 도약은 실제로 실험에서 관측이 됨 - 코펜하겐 학파는 자신들의 연구 방향에 확신을 가지게 됨
불확정성의 원리: 이론이 영향을 미쳐 부분적인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새로운 실험을 시도, 불확정적인 위치와 모멘텀의 곱은 플랑크 상수보다 크다 - 거의 모든 실험에 적용이 됨
보어의 파동 입자 이중성 - 상호보완적인 이론으로 입자와 파동성 두가지 방식의 해석을 만족시켜줌
아인슈타인: 통계 기반의 새로운 양자이론에 부정적, 불확정성 이론을 부정할 사고실험, 보어는 첫번째 실험을 부정, 홀란드는 아인슈타인에게 핀잔, 원자 규모에서는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론물리의 수학기호들은 사실보다는 확률을 나타냄,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지만, 신이 어떻게 세상을 운영하는지와 우리는 상관이 없을 수 있음
개인적인 생각
그 유명한 불확정성의 원리가 나오네요. 측정조차도 위치와 운동량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알수 없고 추측만이 가능하다고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그 배경 설명이 나와 조금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양이로 유명한 슈뢰딩거와 보어의 일화도 유명한데요.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도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당대 유명한 학자들의 부정적인 입장이나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이론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하이젠베르그와 보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려움과 난관이 있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여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7 Science and Religion (1927)
요약
아인슈타인: 객관과 주관의 영역을 주관하는 중심 질서가 있음, 파올리와 하이젠베르크는 주관의 영역은 개인적인 것이라며 동조
디락: 종교는 아편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이용될 뿐임, 인생도 과학이며, 개인이 가지는 확장된 개념은 심리적 초월구조에 지나지지 않음
보어: 기본적으로 디락의 의견에 동조, 주관과 객관을 나누는 것에 회의적,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기반으로 과학은 이미 객관적이며 주관적이라 주장, 과학은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종교는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침, 목적에 따라 해석하는 경향도 과학에 나타남, 디락은 종교가 불러일으키는 내부 모순과 자기 파괴성을 잘 경고했음, 파올리는 종교의 위험성을 벗어나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잘 지적했음, 미신이라도 유익함을 줄 수 있음
개인적인 생각
과학을 신봉하면서도 기독교인이기에 이번 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신앙생활이냐 종교생활이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본 메시지는 천국에 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살다보면 천국에 가는 것이지, 천국에 가기위해 올바르게 살아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지요. 올바르게 사는 것은 주관과 개관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것과 주관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것이 구별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과학이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것처럼, 종교도 주관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이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여러가지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올바른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객관을 도외시하고 주관에만 충실하는 경우 쉽게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천국에 가기 위해 올바른 길을 망각하거나 심지어는 이단의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되겠지요.
8 Atomic Physics and Pragmatism (1929)
요약
호아그: 자연 법칙이라는 용어는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에 대한 특별한 표현에 지나지 않음, 양자 역학 역시 기존의 과학의 향상이며, 점진적인 향상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모르는 현상들을 설명해줄 것임
하이젠베르그: 향상이라는 단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 폐쇄 시스템 - 정교하게 고안되고 일관성을 가진 법칙들이 지배하는 개념과 논리적인 상관성을 가진 시스템, 연속적인 진보는 모든 물리법칙들이 궁극적으로 단순해야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주지 못함, 일관성을 가진 법칙들이 없이는 과학이라고 말하기 힘듬, 진정한 과학의 대상은 어떤 현상에도 적용이 되는 법칙이어야 함
디락과의 대화: 모든 자연현상을 만들어낸 매커니즘으로 우리의 의식구조도 만들어졌음, 과학에서의 기본적인 관계들은 단순하고 우리의 생각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해가 가능하다고 봄
개인적인 생각
이번 장에 나온 과학발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서양철학사에서 유명한 귀납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플라톤의 영향으로 이성을 통해 진리를 알아낼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흄은 귀납의 문제로 불가지론이라는 반론을 제시하게 됩니다.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 능력을 필두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으로 인해 그 믿음에 대한 희망이 생겼으나, 절대진리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니체 덕분에 현대는 불가지론과 상대주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이젠베르그의 주장은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는 보편(절대) 진리가 존재하며,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과학적인 방법론이라는 것 같습니다. 니체의 철학을 받은 현대의 시각과는 배치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포퍼와 쿤도 소환이 되는데요. 경험적 데이터가 쌓여서 귀납추론이 가능하다는 관점에 반해 연역추론만이 과학적 추론 방식이라고 포퍼는 주장을 했는데요. 연역추론이 가능하려면 가설이 먼저 세워지고, 데이터는 가설에 대한 검증에 사용이 된다고 보았을때, 하이젠베르그의 주장은 포퍼의 주장과 결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 기존의 패러다임이 다양한 경험적인 데이터로 인해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과학이 발전한다는 주장을 한 쿤의 관점은 디락이나 호아그의 관점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편, 대학원 시절 과학자로서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지도교수님의 말씀도 생각이 났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모은 데이터들에 대한 성급한 종합적인 해석에 대해 경계해야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지요. 그래도 과학자들은 언젠가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해야만 하는 시기가 있고, 비록 후배들의 연구에 의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는 하더라도 그 집대성은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하이젠베르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보편이론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가 과학발전의 한면이기는 하지만, 그 패러다음은 경험적 데이터의 축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도 발전의 또 중요한 한 단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학자의 사명은 자신의 연구의 결과를 나름의 보편이론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비록 후대에 바뀔 수 밖에 없는 운명일지라도 말이지요.
9 The Relationship between Biology, Physics and Chemistry (1930~1932)
요약
양자이론을 믿지 못하는 아인슈타인: 양자이론의 불확실성에 대한 회의, 양자 이론의 연구가 완전해질 수 없다고 믿음, 보어는 아인슈타인이 정통한 열역학과 양자역학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 열역학은 온도, 양자역학은 에너지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 경계는 불명확하지 않은가?
생물학적 물리학적 과정의 구분: 상호보완성의 또하나의 확장, 모든 것은 어느정도의 힘이 가해지면 원래의 상태로 복구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생물이나 원자, 분자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음, 모든 것이 통합된다면, 양자역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까? 아니면 부분적인 것만 설명하는 법칙이 될까?
진화론: 수십억년의 시간이 지난다고 우연한 변형과 자연선택의 과정으로 과연 복잡한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는가? 현재로써는 알 수 없음
의식에 대한 이론: 양자 역학의 확장이 의식까지도 설명할 수 있을까? 의식도 실질적인 것이라고 보면 언젠가 시간이 지나 접점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면 확장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
물리학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4대 힘이 있다고 하는데요.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라고 하지요. 이들 네가지 힘이 세상의 물리학적 현상들은 잘 설명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네개의 힘은 관연 어디에서 오는가인데요. 양자 이론을 공부하시는 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근원을 알아내기 위함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연히 철학과 가까운 영역의 연구가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야망이 어마무시해서 모든 힘의 근본원리를 설명하는 양자이론이 생물학이나 의식과 같은 세상의 모든 상위 현상들도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엿보입니다. 논란의 요지가 많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저는 현재의 과학들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몇가지 명백히 관측 가능한 확률이 높은 사건들을 기반으로 쌓은 놓은 경험들의 집합이라고 봅니다. 특히 뉴턴 물리학이 그렇지요. 중력 가속도가 왜 9.8 m/s^2 라고 정의해놓고 우주선을 올려보내기도 했는데요. 왜 9.8 m/s^2가 되어야 하는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 궁금했었습니다. 물리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쓸데없는 거 물어보지 말라고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그때, 물리 선생님 덕분이 아니었으면 양자 이론을 공부하려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양자 이론의 발전으로 보다 많은 현상을 한꺼번에 설명해주는 이론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10 Quantum Mechanics and Kantian Philosophy (1930~1934)
요약
칸트 철학의 관점: 인과 법칙은 필수적인 선험적인 것으로 이를 무시한 양자 역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음, 다양한 실험 결과를 통해 인과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하는 것은 인과 관계를 발견하지 못한 것에 지나지 않음
현대 물리학: 원자 물리학에서는 관찰이 물자체에 대응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음, 칸트의 물자체 역시 상대화되었음, 원자는 물자체나 객체에 해당되지 않음
시대에 따른 진리: 칸트의 물자체에 대한 상대화는 불가지론에 지나지 않음, 칸트의 시대에는 칸트의 설명이 옳음, 현대 물리학에는 새로운 인식론적 문제가 있음,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사고방식도 변화해가고 있음
개인적인 생각
역사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사고방식이 변화하므로 진리 혹은 물자체가 상대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보편이라는 개념 역시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와 현대 사회의 인종에 대해 보편적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르듯이 말이지요. 촘스키의 보편언어와도 연계하여 설명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진화적으로 발달한 뇌기관을 기반으로 하는 보편언어 역시, 해당 뇌기관이 심화된 진화로 변화가 되면 보편언어 역시 변할 수 있으므로 상대주의가 됩니다. 그러면에서 모든 진리는 시대진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해당 진리가 상대적으로 긴 생명주기를 가졌다고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11 Discussions about Language (1933)
요약
양자역학의 역설: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용의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듯이 전통 물리학과 다른 결과를 전통 물리학으로 설명해야 함
실증주의에 대한 논의: 모든 단어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기에 제대로 사용되어야 함, 제임스의 이야기로 단어에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있다는 해석을 보어는 지지, 명확하지 않은 개념과 논리의 형식인 언어로 자연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의 한계
지능과 본능에 대한 논의: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이용하여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본능보다는 지능을 활용하기 위해 진화했으며 그에 따라 언어도 만들어지게 됨, 지능과 본능은 배타적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일종의 같은 것이라고 보아야하지 않는가? 지능과 본능은 다른 것인데, 인간이 두가지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이 논리 실증주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요. 실증주의자들에 이야기가 나오기에 자연히 비트겐슈타인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의미있는 대화나 토론을 위해서는 공통의 언어의 의미와 다룰 수 있는 영역을 명확하게 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과학 기술이 발달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학문간의 통섭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12 Revolution and University Life (1933)
요약
국가 사회주의 소년과의 대화: 전쟁 이후 부익부와 빈익빈으로 쇠퇴해가는 독일을 위해 정치적인 활동을 해야하지 않는가? 정치적인 운동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
플랑크와의 대화: 히틀러와 만나 이야기를 해본 결과 사임을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단지 경력에 타격이 있을뿐임, 모든 것이 끝난 이후를 생각하면서 재앙을 받아들이며 남는 것이 바람직
정의와 사랑의 문제: 타협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민을 가는 것도 칸트의 가르침에 반함, 정의에 따라 9명을 죽이는 것과 정의를 버리고 사랑에 따라 9명을 살리는 것이 나은지? 결국 독일에 남기로 함
개인적인 생각
정치적으로 불안한 사회에서 과학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이젠베르그는 독일의 핵무기 개발에 지휘했는데, 자신의 연구가 핵무기가 아닌 핵발전에 활용되기를 바랬다고 알려집니다. 칸트의 보편적인 법칙을 따라야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독일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차라리 추방을 당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그의 고백이 마음 찡하게 느껴지네요.
정의냐 사랑이냐에 따라 9명을 살려야하는지 죽여야하는지 문제는 조금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하이젠베르그였다는 나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마 하이젠베르그와 같이 남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의에 반하면서도 9명을 살리려는 것과 연결이 될까요?
13 Atomic Power and Elementary Particles (1935~1937)
요약
원자물리학의 빠른 발전: 입자 가속기를 이용한 충돌 실험, 원자핵은 동일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다양한 크기의 입자, 대칭성의 존재 - 내부의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의 교환이 이루어지더라도 핵물질을 묶어주는 힘은 동일
러더포드, 보어와의 원자력에 대한 대화: 핵에너지를 기술적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가? 원자폭탄에 대한 생각은? 핵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열이 필요해서 물질들이 다 증발하거나, 그렇게 에너지를 얻어도 발산이 되므로 들인 에너지에 비하면 비효율적, 얼마 후 한스의 우라늄 핵분열의 발견으로 이런 생각은 바뀜
오일러와의 기본입자에 대한 대화: 광양자가 원자핵을 통과하면서 전자와 양전자로 변화하는 디락의 발견, 광양자는 전자와 양전자로 구성이 되는가? 그렇다면 빛과 빛이 부딪히면 산란을 해야하지 않는가? 에너지가 높으면 하나가 아닌 두개의 전자와 양전자가 나오는 이유는? 물리법칙은 변화하지 않으며 변화되는 원자는 대칭성을 가진다. 대칭성이 입자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하이젠베르그는 두개의 에너지가 높은 기본 입자가 충돌하면 새로운 입자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계산으로 증명, 오일러는 빛과 빛이 충돌하여 산란한다는 것을 증명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 모든 것의 근원은 에너지라고 믿고 있었는데요. 이번 장에서 다루는 기본입자에서 대칭성이 입자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유물론을 부정하고 순수한 관념론을 옹호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에너지가 일정한 법칙을 바탕으로 입자와 같이 인식되는 실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상위에는 유물론적인 입장에 동의를 합니다.
원자력에 대한 대화 역시 재미있었는데요. 독일의 핵개발에 앞장을 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일까요? 이번 장에서 시종일관 원자력에 대한 기술적인 활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네요. 바로 전장에도 나오지만, 나치에 대한 거부감에도 자신의 조국을 떠나지 못한 힘없는 과학자의 회환이 묻어나오는 듯 합니다.
14 Individual Behavior in the Face of Political Disaster (1937~1941)
요약
페르미와의 대화: 미국으로 망명하라는 충고에, 조국의 젊은이들을 내버려둘 수 없다고 대답,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 배워야 하며, 도망치는 것은 않됨, 결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독일에 남기로 정했으므로 남을 것임
프레드릭과의 대화: 연쇄 반응을 이용하면 순수 우라늄 봉과 흑연, 중수를 이용하면 통제가 가능한 원자력을 만들어낼 수 있음, 전쟁이 끝난 이후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에 집중,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숨겨야 함
오일러: 혼란한 상황에서 원자력을 이용하는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김, 공산주의의 타락으로 혼란한 상황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여김, 정찰 비행대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함
개인적인 생각
차마 조국과 젊은이들을 버리지 못해서 망명을 선택하지 않았던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에 협력을 하면서도 자신이 옳다는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재앙을 방지하는 것을 배워야하며 도망치는 것은 않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일환으로 전쟁 후 유익할 수 있는 원자력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원자폭탄 제조를 지연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찾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졌습니다.
자신이 신봉했던 공산주의의 타락을 통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오일러는 학자로서 누릴 수 있는 다소간의 특혜를 거부하게 됩니다. 결국, 연구를 포기하고 군대에 자원했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데요. 하이젠베르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망명을 하는 페르미, 고국에 남아서 연구를 하는 하이젠베르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오일러의 모습이 당시 학자들의 행동을 대표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이젠베르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은데요.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15 Toward a New Beginning (1941~1945)
요약
우라늄 연구에 대한 대화: 독일의 우라늄 클럽의 학자들이 원자폭탄의 개발로 연결될 수 있는 연구를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보어의 조언을 구하지만 오래된 우정도 갈라놓는 전쟁의 잔인함만 확인
전쟁 이후 독일에 대한 논의: 독일 사람들은 기초과학 연구 없이 현대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전후에도 과학은 발전할 것이라고 봄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 경제적인 측면보다 교육적인 측면이 중요, 비평적 사고를 개발하여 국가 단위의 과학적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해야함
개인적인 생각
핵폭탄 개발 문제로 조언을 구하러 찾아간 오래된 친구인 보어 조차도 전쟁으로 서먹하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국가 간의 문제가 개인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전쟁 상황이라 보어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 처한 하이젠베르그의 답답함도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 단위의 합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름 과학 예술의 철학적 법칙을 중시했던 독일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나치가 득세하고 결국 세계 대전의 주범이 되어가는 모습을 독일의 과학자로서 상당히 답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들 합리적이라도 국가나 집단이 합리적이지 못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자는 군중 심리와 같은 심리적인 요인으로 국가나 집단의 비합리성을 설명하려고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어쨌든, 비평적 생각을 기반으로 논리적인 논의로 합리적 의사 결정의 능력을 국가나 집단이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16 The Responsibility of the Scientist (1945~1950)
요약
히로시마 원자폭탄: 함께 끌려간 동료들과 함께 히로시미 원자폭탄 소식을 듣고 놀람, 원자폭탄을 개발한 한은 죄책감을 느꼈을까? 인류의 발전을 위해 과학은 필요한 것이므로 개별적인 연구 결과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음, 개별 과학자들은 치환이 가능
과학자들의 공공에 대한 역할: 국제 사회 힘의 논리로 미국은 원자폭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음, 미국 학자들의 충고도 의미가 없었을 것임, 객관성과 사실기반성, 그리고 논리적 정확성을 높임으로 과학자들은 정치에 기여할 수 있음, 과학자들의 대중에 대한 역할이 중요
풀려 난 이후: 보어를 만났지만 과거의 앙금은 해결을 못함, 그래도 향후 연구에 대한 관심은 공유, 과학자들의 공공 참여에 대해 노력하지만, 학계는 여전히 예전 방식을 추구하여 별다른 효과는 없었음
개인적인 생각
석사 시절 로보틱스 RA를 했었는데요. 미국 국방성 휴머노이드 개발 프로젝트 펀딩으로 연구를 했기에 터미네이터와 같은 로봇을 걷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참여했습니다. 그 로봇의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고 모든 부품이 특수 합금으로 이루어져있어 군사용 로봇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같이 연구하던 교수님과 동료들과 연구 윤리와 관련된 철학적인 질문들을 자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연구 결과가 결국에는 살상무기라면 연구를 거부해야하지 않는가? 그래도 우리들의 연구가 인류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기술발전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 않은가? 연구의 결과가 가져올 수 있는 최악과 최선의 상황에 대한 가치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실제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최악의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관련 연구를 했던 사람들의 고뇌가 남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과학자들의 공공에 대한 역할에 대해서는 저자의 계몽주의적 사고와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객관성과 사실기반, 그리고 정확한 논리가 정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계몽주의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정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에 합당해서 그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한정적인 삶이라는 틀에 갇혀있는 개별적인 인간들의 인생들이 행복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한 시대 정신의 의무에는 동시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다음 시대를 위한 공헌도 포함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다음 시대를 위한 공헌이 동시대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않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계몽주의 폭력은 그런 관점에서 과도한 도덕적인 판단으로 동시대 사람들을 불합리하게 억압한다는 느낌이 들고요. 어쨌든 저자의 주장을 연장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공공에 표출되고, 토론이 되고, 조정이 되며,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치적인 기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의 발언만 중요할 수는 없겠죠.
17 Positivism, Metaphysics and Religion (1952)
요약
실증주의에 대한 보어의 비판: 초기 과학은 경험적인 것보다 보다 넓은 그림이 필요했던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음, 이로인해 미신이 판을 치고, 초기 과학은 이런 미신을 박멸하기 위해 노력, 실증주의는 이런 생각들을 체계화한 것일 뿐임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쉴러의 시에 나오는 공자사상에 따르면 넓은 마음은 경험의 풍부함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과 우리들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겠해주는 개념들의 풍부함을 말함, 진실은 깊은 곳에 존재, 형이상학의 메타는 이런 진실을 다루지 못하고 피상적인 것들만 다룸
중심질서에 대한 생각: 인간의 의식과 그에 의한 의도가 세상의 구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면 모호해짐, 종교는 그런 모호함에 해답으로 가치에 관련된 문제를 다룸, 결국 중심질서와 인간 사이의 관계 문제, 질서는 선, 혼돈과 무질서는 악이라는 구도에서 자연은 선한 질서의 규칙을 따름, 양자이론은 이런 질서를 수학적인 용어로 표현했는데, 일상적인 언어로는 우화나 역설 혹은 모순적인 상호보완의 관점에서만 설명이 가능
실증주의에 대한 하이젠베르그의 비판: 자연적으로는 질서있는 상태로 돌아가며, 인간의 영혼도 중심질서와 연결됨, 실증주의의 기반인 실용주의는 실질적인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법칙이고,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현대 실증주의는 넓은 시각을 도외시하는 실수를 저지름, 실용주의가 가지는 중심 질서는 기독교 사상이라고 볼 수 있음
개인적인 생각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각해야한다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실증주의를 신봉하는 편입니다. 과학자들도 실증주의를 중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을 읽으면서 저 개인도 미국식 자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 자라다보니 미국식 실증주의에 뿌리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세부적인 사항들에는 강하지만, 이런 세부적인 지식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해내는 능력이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현대 인문학의 유명한 책들의 저자들 중에 독일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눈에 뛰었습니다. 철학이 유명한 나라이기에 모든 것의 중심인 질서를 중요시하는 독실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넓은 시야를 갖추어야 세부적 분야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소양이 갖추어지는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전문 지식을 기반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전문 지식들의 효용성을 떨어진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18 Scientific and Political Disputes (1956~1957)
요약
원자로에 대한 정치적 문제: 원자로의 위치는 연구소와 가까운 것이 효율적이지만, 지역 경제 정치적인 이유로 의외에 장소로 선정, 민주주의 하에서도 원자력 관련 산업을 여는 것과 같은 중요한 결정이 효율성 보다는 여러 이해의 세심한 조율을 원하기에 오히려 효과적인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람
파올리와의 논쟁: 기본 입자 이론에 대한 가능한 수학식에 대한 제안, 파올리는 중국계 미국인 리의 모델에 심취, 둘이 과격하게 싸우면서 아무런 진전도 내지 못함, 파올리는 시간 낭비라고 그만 두자고 하지만, 하이젠베르그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는 파올리를 이해시키는데 성공, 재미없는 적개심이 없는 상태로 돌아감
원자력 무기에 관한 논쟁: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만을 지지한다는 물리학자들의 선언은 독일 국민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침, 소련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아드나우어 수상의 반감, 물리학자들은 인간이 선하다는 이상주의에 사로잡혀있다고 공격, 하이젠베르그는 자신들은 지극히 현실주의자이며 원자력 무기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독일의 정치적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고 주장
개인적인 생각
학자로 연구에만 몰두하겠다는 프레드릭의 이야기에 하이젠베르그는 정치는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역하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에서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지요. 어떤 면에서는 고집불통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신념이 굳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올리와의 논쟁도 마찬가지인데요. 상대방이 시간 낭비이니 이제 그만하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이해시킨 것은 고집일까요? 아니면, 열정일까요?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은 이를 고집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열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장의 앞부분에 하이젠베르그가 모든 사람들의 이해의 균형을 찾으려는 민주주의가 효율적인 방식을 도출할 수 없다고 실망한 부분이 기억이 나는데요. 어쩌면 하이젠베르그는 그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한 민주주의에 특화된 시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담삼아 필요하면 죽창이라도 들어야 한다고 저는 가끔 주장하는데요. 실제로 죽창이 아니라 하이젠베르그와 같이 적극적으로 세상에 자신의 주장을 표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19 The Unified Field Theory (1957~1958)
요약
좌우대칭 구조에 대한 논의 - 중국인인 Lee와 Yang의 거울 혹은 좌우대칭구조 발견, 대칭 구조의 변형이 방사선의 원인, 파올리의 20년전 예측의 예로 관심을 가짐, 대칭구조의 붕괴로 우주적 비대칭을 설명할 수 있음, 파올리는 추상적인 수학적 모델에 대칭구조가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고, 나뉨과 통합의 개념이 유용하다고 생각
새로운 장방정식의 발견 -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 구조 뿐만 아니라 양성자 중성자 구조도 설명이 가능, 정의 되어있지 않은 기본 입자 이론의 기본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음, 파올리의 열정적인 연구
파올리의 죽음 - 갑작스런 연구 중단을 선언, 하이젠베르그와 마지막 만남에서 지속적인 연구를 격려, 그리고 갑작스러운 연락
개인적인 생각
통합장 이론이라는 제목 때문에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하는 새로운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으로 기대를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가까운 동료 학자인 파올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로 생각되는데, 중국인 젊은 과학자들의 대화를 통해 영감을 얻은 하이젠베르그와 파올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를 펼쳐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젊은 학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받아들이는 나이든 저명한 학자의 겸손한 자세가 첫번째로 인상적이었고, 그를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열정을 잃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은데요. 자신이 강하지 않아 연구를 중단했다는 파올리의 고백에서 생각해볼 수 있듯이, 건강으로 인해 연구에 대한 열정을 지속시키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관점이면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요소인가요? ㅎㅎ
20 Elementary Particles and Platonic Philosophy (1961~1965)
요약
통합장 이론의 물리학적 철학적 측면에 대한 대화: 단순한 대칭 구조를 이용하여 우주의 다양성을 설명, 태초에 대칭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우연히 지속적으로 반복이 되면 다양성이 형성, 특정한 형태를 가지는 이유는 플라톤이 말한 소위 중심질서 때문일 수도 있음
생물학의 인신론적 문제: 몸과 영혼의 문제, 다윈의 이론에 따르면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변이들이 자연에 의해 선택되는 과정으로 적합한 것만 살아남음, 어떤 목적은 그것을 달성하는데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음, 두가지 다른 결과들의 중첩으로 두가지 복잡한 변수들의 연속적인 그룹들을 정의해보려는 시도, 두가지 상호구조는 헤겔의 정반합 구조보다 더 기본적일 수 있음.
우리가 인생이라는 거대한 드라마 속의 구겅꾼이나 배우이거나 잠시 머무는 방문자에 지나지 않더라도, 인생, 음악, 과학은 언제나 지속된다.
개인적인 생각
예상했던대로 마지막에는 세상의 모든 현상들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삶에서 여전히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확실히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이젠베르그가 연구하던 양자역학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근접한 학문일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철학적인 질문들이 오고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양자 역학과 관련된 내용들 보다는 하이젠베르크가 연구를 하면서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던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생각과 지속적으로 비교하면서 진리를 추구했던 위대한 과학작의 열정을 배우고 싶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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