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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그림자

Writer: Olant POlant P

최유안 작가의 소설‘새벽의 그림자’를 읽었다.독일에 있는 베르너라는 지역에 살던 탈북자 윤송이 사망사건에 대해서 살인사건이라기보다, 자살사건으로 마무리된 것에 대해서 의아해하며 조사를 하는 주인공 변해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우연히 알게된 다른 탈북자 용준과의 관계와, 윤송이의 아이를 둘러싼 또 다른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탈북에 성공해서 독일에 와서 살고 있지만, 다시 잡혀서 북한으로 송환될 수도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불안해하는 모습들이 작가의 섬세한 글 속에 묘사되어 있다. 용준이가 얘기하던 인간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선한쪽으로 진화한다는 칸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윤송이 사망사건의 범인을 찾으려고 할때 그 주변의 사람들이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모습이나 탈북자들의 모습이 노출되지 않고 윤송이의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인다. 공격하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이야말로 회피를 수단으로 자신의 선함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로서의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용준의 동생이 다시 북한으로 잡혀가는 현실 속에 좌절하여 결국은 죽음을 선택한 용준의 모습에서,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태어났는데 노력으로서도 뒤집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 그 사회가 이상한 것이다.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에 나오는 공정한 정의를 정립하기 위한 조건중의하나인‘무지의 베일 (Veil of Ignorance)’처럼, 사람들이 무지의 장막으로 가려진 채로 어떤환경에서 태어나고, 어떤 능력을 가졌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태어난 조건을 모른다고 가정하고, 태어난 조건을 모른다고 가정할때에야말로, 어느 누군가에게만 이로운 쪽으로의 공정한 원칙을 구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인이 부자에 잘생긴 스마트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가난하며 능력이 없는자로서도 태어날 수도 있으므로, 부자에게만 이로운 조건으로의 정의를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다. 힘없이 권리없이 태어난 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험과 같은 의미로 내게는 해석되었다. 책 속의 탈북자들처럼, 힘없이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들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없어질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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