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은 한반도의 분단과정을 어떠한 역사 저술보다 올바르게 총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민주화와 민족통일 운동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황광수(문학평론가)
태백산맥의 탁월함은 무엇보다 역사의식의 치열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소설의 작가 조정래는 8.15 이후의 민족분단 과정과 6.25를 중심으로 하는 분단고착 과정을 밝히기 위한 현지답사와 탐문, 진실을 드러내려는 열정과 용기, 그리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우리 현대사 물줄기의 궤적을 제대로 그려내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오늘의 역사에 올바르게 이어주고 있다. 강만길(역사학자,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태백산맥의 거대함을 사랑하기 보다는, 그 구체성을 사랑한다. 구체성이라는 것은, 삶과 역사에 대한 직접성이다. 이데올로기는 삶에 대한 직접성을 확보함으로써만 역사 앞에서 순결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관념이 아니라 생명의 분비물이다. 생명의 분비물일 때만,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가동시킨다. 우리는 태백산맥에서 그렇게 역사를 가동시키는 이데올로기의 힘을 읽는다. 김훈(소설가)
올해 하반기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벌교를 방문하고 싶었어요.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이때다 싶어 왕복 6시간 운전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라는 인용구와 선생님의 서명이 그려져 있는 문학관 외관이에요. 옆에는 일랑 이종상 작가의"원형상 - 백두대간의 염원"이라는 거대한 벽화가 있는데 한 프레임 안에 다 잡지 못 했어요..
작가가 절규하는 통일의 염원은 이 시대 우리 민족의 화두이며 과제다. 이를 담아내기 위하여 북향의 건축물을 설계한 용기에 부합되도록 남향의 벽화에 아쉬움을 채우는 비보회화로 문학, 건축, 미술이 조화를 이룬 세계 최초, 최대의 용석벽화를 제작했다. 그래서 문학관에서 바라보는 '염원의 백은 동서 좌청, 우백이 병치되고 도치시킴으로써 북향이 아닌 남향의 자연스러운 시각 효과를 기대하게 되며, 모든 사원이 소멸되고 관용의 미학이 빛을 발한다. 지리산부터 백두산까지 4만여 개의 자연석 몽돌을 채집하고 하나하나에 민족의 염원을 담아 건식 공법으로 제작한 옹석벽화이니 모두 여기에 동참하여 통일 염원과 함께 자신의 염원을 간구해보자.
2008년 문학관을 지으신 김원 건축가님의 메세지가 여기 입구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입구 가까이에 선생님과 큰 손자분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왼쪽부터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육필원고를 쌓아 올린 모습이래요. 아래 사진들은 16,500매의 육필원고 첫장과 끝장입니다.
1층에는 조정래 선생님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작품 속 이야기 뿐만 아니라, 6년간 집필하시며 사용하셨던 담뱃대, 찻잔, 볼펜과 만년필, 도장, 한복, 종, 벌교읍내와 지리산 약도, 취재노트 등까지 볼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특히 선생님께서는 평소 하루 두 갑씩 피우셨는데, 글을 시작 후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네 갑까지도 피우셨대요.
이 다음부터는 취재 노트와 자료들입니다.
얼마나 태백산맥의 열풍이 대단했는지 알 수 있던 기사였습니다.
이후 이 작품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11년동안 많은 구설수에 올랐었는데요. 수많은 기사와 음해성 삐라, 협박 내용 증명, 고소 및 고발장, 경찰청과 주고받은 편지, 조정래 선생님께서 쓰셨던 두 통의 유서까지... 그저 짧은 글로만 봤던 11년의 세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시관 반대편에는 무혐의 결정 보도기사가 붙여있더라구요.
아래에는 1부부터 4부까지의 내용을 담은 조각들입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읽을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다음 사진 4개를 건너뛰시면 책 내용이 나오지 않는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읍내를 에워싼 불길.
벌교는 토지를 돌리싼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엄청난 갈등의 끝이 깊었던 곳이다.
이러한 감동은,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의체력과 토착지주를 중심으로 한 우익세력의 대립의 상징인 봉화가 타오르는 장면.
"어, 저것이 뭐여? 도깨비불도 아니고."
"아니! 저짝에도..."
"아닌디, 저짝에도 있는디."
니만 사람이냐.
지주 정현동이 토지개혁의 허점을 파고들어 멀쩡한 눈에 바닷물을 끌어들임으로써 염전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에 분개한 소작인의 낮에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아, 딸린 욕심이 수맥이든 수천이든 니가 알 바 아니여. 성가시럽게 허덜 말고 썩 비켜나라니께"
"야이 씨부랄 눔아. 너만 사람이냐아!"
우리 아부지가 하대치요.
스승과 제자, 혈연관계가 이데올로기로 인해 갈라지는 현실에서 얼마 전까지 선생님이었던 선우진이 자신의 제자를 고문하는 장면······
"내가 묻는 말은 한 번씩뿐이다. 절대 두 번 묻지 않는다. ···(중략)··· 똑똑히 알아둘 것은 이젠 내가 너희들의 선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략)··· 여긴 적당히 넘어가는 교실이 아니고 경찰서 지하실이다. 그리고 난 특무대고, 넌 빨갱이다."
휴전선으로 변한 삼팔선.
치산 세력의 몰락으로 인한 수류탄에 자폭한 엄상진. 그의 목이 벌크 옵내에 내걸린다. 그것을 지키는 경찰과 남은 시신이나마 수습하려는 그의 가족이 실랑이를 벌인다. 이 와중, 염상진의 동생이자 반대진영에 서 있던 염상구의 출연으로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
"살아서 빨갱이지. 죽어서도 빨갱이냐."
태백산맥 영화 시나리오와 포스터, 비디오 테이프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영화 평론 기사도 스크랩해서 전시하셨더라구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라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잘 보존된 신문 기사를 읽으니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던 책들과
프랑스어와 일본어로 번역된 책 시리즈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한국에서 출판된 표지와는 또다른 매력을 가졌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해냄 출판사의 50주년 개정판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2층에는 애독자들의 필사본이 모여 있었는데 20대부터 86세의 독자까지 책 전권을 써서 기부한 것을 보며 마음이 웅장해짐을 느꼈습니다. 다른 한 쪽에는 아들과 며느리의 필사본도 이렇게 전시되어 있었어요. 다들 필체도 예쁘더라구요.
이건… 휴식하는 곳으로 만들어져 있던 곳에서 발견한 독서대였는데 너무 갖고 싶어서 한 번 찍어봤습니다 ㅎㅎ
벌교에는 태백산맥 속 나오는 인물의 집과 다른 장소들이 여기저기 숨어있었어요. 길을 걷다가도 태백산맥 속 문장이 보이고, 벌교 어디에서나 안내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작품에 진심인 동네였습니다. 더 많은 장소가 있었지만, 저는 소화의 집, 현부자네 집, 소화다리 (부용교), 김범우의 집 (아쉽게도 공사중이었습니다), 남국민학교, 남도여관 (보성여관), 술도가, 그리고 중도방죽까지만 방문하고 돌아왔어요. 식당 이름과 골목 여기저기에 숨겨진 태백산맥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태백산맥 모임 멤버 이름도 방명록에 남겨두고, 기념품으로 태백산맥 1권 사인본을 사왔어요.
중도방죽과 아름다웠던 노을 사진으로 글을 마칩니다. 시간적 여유가 되시면 정말 날 좋은 날에 벌교 한 바퀴를 산책하며 태백산맥 작품 속 걷기를 해봐도 너무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외서댁 꼬막나라 ㅋㅋㅋㅋ 먹어보고 싶네요. 감사해요. 너무 좋은 여행이었을듯요. 저도 한국가면 방문해보고 싶네요 ^^ 우리 태백산맥 끝내고 '아리랑' 도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 ^^